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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독재, 인간 관련 한국 소설 추천 지금 읽어야 할 책: 조세희_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수상 독후감 첨부

바밀리온 엔터테인먼트 2024. 10. 9. 12:51

 

안녕하세요. 출판사 바밀리온입니다.
2024년 가을. 정치권과 사회권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다사다난합니다. 게다가 경제위기와 국제정세 또한 기민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읽어야 할 책,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소개합니다. 
(본인이 2016년도 대학교에서 수상한 독후감 내용을 첨부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개요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현대 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78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사회적 소외와 인간 존재의 고통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줄거리 요약

소설은 주인공인 난장이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난장이는 몸집이 작고 외모로 인해 차별받는 인물로, 도시의 빈민가에서 가족과 함께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일자리와 생계 문제로 고통받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극복하려고 애씁니다. 특히, 난장이의 아들인 '나는 사람이다'라는 대사는 그들의 인간 존재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현합니다.

작품은 난장이가 공을 쏘아 올리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그가 꿈꾸는 희망과 현실의 간극을 보여줍니다. 그 공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난장이가 바라는 행복과 자유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난장이가 처한 현실은 그의 꿈과는 정반대이며, 이로 인해 독자는 깊은 슬픔과 함께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주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주제는 주로 빈곤, 소외,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작품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비판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촉구합니다. 조세희 작가는 빈민가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그들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사회적 책임을 일깨웁니다.

특히, 난장이가 처한 비극적인 상황은 그가 단순히 물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고통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회 비판과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문장과 스타일

조세희 작가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감정이 풍부합니다.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 있으면서도,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비유와 상징이 적절히 활용되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난장이의 심리적 고뇌를 묘사하는 부분은 독자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시사적 의미

이 작품은 197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반영합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소외되고, 인간적인 삶을 잃어갔습니다. 조세희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작품을 통해 날카롭게 비판하며, 독자가 현실을 직시하도록 유도합니다.

평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입니다. 조세희 작가는 난장이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며,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책 구성 목차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평가받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난장이로 상징되는 도시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75년 [칼날]부터 1978년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와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12편이 수록되었으며, 빠른 호흡의 단문과 아름다운 문체, 환상적인 기법 등 현실과 미학의 뛰어난 결합으로 평가받는다.

 

작가의 말: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 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출판된지 약 50년이 지난 현재, 왜 아직도 읽히는 시대인가  

(독후감 내용이 첨부되어있습니다.)

 

 

 

제목: 사랑을 찾아 가는 삶

 

 며칠 전,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 옆에 마련 된 모델하우스로 아르바이트를 갔다. 모델하우스의 목적은 아파트 분양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청약 신청을 하러 온 사람들을 통해 아파트 분양을 가속화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보조 역할이었다. 궁금했다. 왜 다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에 대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원래 그 곳은 전주의 오래된 군부대였다고 한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군부대를 이전 시킨 걸까, 군부대가 이전했기 때문에 빈 공간을 사업화한 것일까. 어려웠다. 나는 단순하게 아파트를 지어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군부대에 간직된 추억들이 더 고귀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난장이 연작을 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재개발로 인해 집을 빼앗기는 난장이의 삶으로서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열두 편의 단편으로 묶인 이 소설은 난장이 가족과 여러 인물들이 각 단편의 경계를 허물고 등장해 그 시대의 해결되지 않은 시대적 숙제와, 깊이 타락된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든다. 그 시대의 실상보다 더 실상에 가까워 보여 그의 인물들은 거침이 없고 그 인물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날카롭다.

작가의 말에서 조세희 작가는 그동안 이어져온 독자들에 의해 난쏘공 연작이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공감이 되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어떻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 ‘난쏘공시대와 오늘날의 시대가 겹쳐보였다. 그래서 그 시기보다 20년이나 늦게 태어난 나도 부모님 세대가 느낀 산업화 과도기의 시기에 공감이 갔고 감정이입이 되었다.

 

 집을 잃은 난장이가 죽고 그의 가족은 은강시의 공장지대로 간다. 큰 아들 영수는 노동자에 대한 부조리에 증오를 가지고 노동 운동을 한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영수는 권력의 상징인 경훈의 숙부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된다. 이상 세계인 달나라를 꿈꾸고 노래하며 현실을 개혁하고자 고군분투한 영수의 결말은 결국 살인이다. 그것은 영수의 이데아가 아니었다.

비록 온전하게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영수의 입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순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군대에서 했다.

 

 어느날 아버지가 군대에 있는 내게 말했다. 내가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병의 끝자락에서였다. 아버지는 자신을 비우고 조국을 배우라.’고 했다. 나는 그 때 내가 보낸 18개월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그 기억 속에 내가 배운 조국은 내게 고달픔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군대 시절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최소한의 개인정비시간을 보장 받지 못 했던 순간이 많았다. 새벽 근무로 인해 잠이 부족했고,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계속 되는 생활은 힘들었다. 영수와 그의 동생들도 밤과 낮 구분 없이 점심시간을 반납하면서 아니, 보장 받지 못하면서 은강 공장의 노동자로 살아간다. 어느 순간부터 영수는 노동자 교회에 가서 지식을 넓히고 은강 공장의 노동자들을 조합으로 이끌며 권력에 맞선다.

 나와 친한 한 후임이 권력에 맞서려 했다. “멀쩡한 산을 왜 깎아내립니까? 그것도 포크레인이 아닌 삽과 곡괭이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조기 기상을 해 저녁 7~8시에 막사로 복귀를 하고, 또 그날 야간근무를 서야 하는 한 여름의 대작업 시즌에, 결국 후임은 중대장님도 아닌 대대장님을 찾아갔다. 대대장님도 연민이 있으셨던지 작업 시즌이 끝나고 우리 분대에게 23일이라는 특별 포상을 주셨다.

가뭄에 단비 내리듯 그 순간만큼은 좋았다. 이게 바로 아버지가 배웠다는 조국의 참 의미였을까. 하지만 이것 또한 일순간이었다. 어쩌면 우스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또 포상을 원했다. 변하지 않는 체제에 순응하고 우리의 인간적인 대우는 보장받지 못한 채, 더 힘들고 지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영수는 그런 세상이 싫었다. 그런 세상에서 영수는 배울 수가 없고 체제를 바꾸려는 그의 움직임은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나와 후임 그리고 전우들도 이 체제가 싫었다. 단순히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를 인간적으로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식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린 모두 제대를 했다. 고진감래의 끝은 결국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는 자부심으로 심심찮게 군필자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난장이들의 세상에 고진감래란 없다. 군 전역과 비슷한 해방구, 탈출구조차 없다. 그래서 영수는 달나라를 꿈꾼다. 현실의 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천국의 세계. 그러나 영수는 결국 칼을 들었고 경훈의 숙부를 그것으로 살인한다.

 

 이러한 괴리 속에서 현실과 이데아의 대립을 해소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헌신적인 아가페도, 남녀간의 정욕적인 것도 아닌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랑. 너무 가슴이 아팠다. 영수는 신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염원이 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영수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제대를 하기 전 우리의 염원도 사랑이었다. 군대에선 아가페도 정욕도 신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존재했었대도 난장이들처럼 우리의 염원을 해결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랑은 전우들을 통해서 발휘되었다. 우리들끼리는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사랑했다. 결국 우리의 고달픔은 제대라는 이데아를 통해 해소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들과 연락을 하고 항상 보고 싶기도 하다.

 

 이상하게 나의 눈에는 칼이 유독 인상 깊게 등장했다. ‘하면 떠오르는 건 날카롭고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 그 어떠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신애는 난장이를 지키기 위해, 영희는 자신의 순정을 빼앗은 그 남자를 죽이기 위해, 차력사는 밥벌이를 위해, 꼽추는 도망간 약장수를 죽이기 위해, 영수는 경훈의 숙부를 죽이기 위해 칼을 꺼내든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인물들에게 칼은 모두 공통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의 이데아를 위한, 사랑의 실현을 위한 매개체이다. 허나 그 결말은 이데아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어떤 계층의 사람이든, 그 사람이 어떠한 기질을 가졌든, 그 시대의 이데아를 향한 최선의 행위는 칼이었던 것 같다. 타락된 세상을 향한 타락된 대항이다. 조세희 작가는 70년대의 독재가 없었더라면 이 책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타락된 시대는 어떠한 계층을 망라하고 칼로서 타락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타락된 세상에서 이데아와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어떠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걸까.

 ‘에필로그에서 꼽추와 앉은뱅이는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친 약장수를 찾아 고속도로를 방황한다.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약장수를 죽여버릴거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개똥벌레를 발견하고는 바보같이 좋아한다. 난장이의 여러 인물들은 자신을, 서로가 서로를 벌레라고 비유했다. 꼽추와 앉은뱅이가 본 것은 개똥벌레, 즉 반딧불이다. 그 반딧불이라는 벌레는 꼽추와 앉은뱅이 자기 자신들이고 난장이고 지섭이고 영수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이데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난장이들은 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이데아처럼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도 최소한의 최선을 다해 방향을 일러주는, 씨알 같은 희망이자 작은 등불인 반딧불이를 비춰주는 일, 그게 사랑이 아니었을까싶다.

 

 영호와 영수는 이데아를 위해 노동자들과 파업을 계획했다. 그리고 당일, 같이 계획한 노동자들은 영호와 영수를 배신하고 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 아들 들에게 난장이 김불이는 잘했다고 한다. 또한 배신한 그 노동자들도 잘한 것이라고 한다.

며칠 전 전주대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대학교들이 시국 선언을 할 때, 나는 모델하우스로 아르바이트를 갔다. 그 곳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은 분양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난장이가 살았던 70년대보다 약 40년이 지났고, 반세기가 지나는 시점이다. 아르바이트 현장에는 권력의 상징인 경훈도 , 타락에 좌절하고 만 영수도 없었다.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지 않은 그 순간의 나에 대해 난장이들은 잘했다고 해줄까.

 

 열두 편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분열된 힘에 지나지 않는다. 타락된 시대에 타락된 행위로 꿈을 이루려하듯, 주인공들은 분열된 힘처럼 외롭다. 회의감에 빠지고 불신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열된 힘들이 합쳐지면 사랑이 보이고 반딧불이가 길을 밝혀준다.

그게 이 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0년이 지난, 반세기가 지나는 시점에도 이 책을 읽고 오늘날과 견주어 보게 된다. '난쏘공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 이어져 온 독자들에 의해 분열된 힘이 완성이 되가는 것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들의 어른들이 갈망했던 이데아와 사랑을 실현시킬 때가 오기를 소망한다. 나 또한 전주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꼭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치관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끝.

 

  종합 결론  

 독후감을 썼을 당시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때였습니다. 책과 독후감 모두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포스팅하길 망설였으나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권장도서, 선정도서인만큼 포스팅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과 이 주제를 가지고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고 더 나아가 개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올리게 됐습니다. 물론 본 글과 바밀리온 출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킵니다. 다만, 책의 주제처럼 우리는 인문학과 인간에 집중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상,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주제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맞딱뜨리는, 사회 현상이 될 수 있고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우리네 삶, 즉 말투와 생애 그리고 서사와 삶 등입니다.

 

시대와 세대를 다룬 책과 독후감을 더 보고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박완서 작가의 <기나긴 하루> 편)를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내가 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책: 기나긴하루 <박완서 작가> _ 문학동네

안녕하세요. 전주 출판사 바밀리온입니다. 저의 최애 소설인 고 박완서 작가의 '기나긴하루'라는 책에 대해 소개합니다. (기나긴 하루를 읽고 수상한 독후감이 포함되어있습니다.)"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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